귀신은 있다.
내 외할머니와 외항 아버지는 부부 스님이셨다.
전라북도 김제 어느 산속 마을 자그마한 집 방안에 부처님을 모셨다.
매일 아침마다 하얀 쌀을 가마솥에 지어 수북이 쌓아 올린
흰쌀밥을 부처님 앞에 올렸다.
애기 때부터 국민학교 방학 때마다 나는 외갓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침마다 새로 지은 쌀밥 맛은 정말 맛있었다.
일명 추청벼 쌀이라 불린 것 같기도.....(정확하게 기억은 안남)
가끔 산속까지 오시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살아있는 닭을 보자기에 잘 여미어 들고 오는 분도 있었고,
(이때 보자기 사이 구멍으로 닭 대가리만 보이는 거 보고
닭과 눈이 마주쳐 많이 놀랜 기억이 난다.)
달걀을 지푸라기에 소중히 여며 가지고 오는 분도 있었다.
하얀 흰쌀을 자루에 넣어서 오시는 분들도 자주 있었고,
현금을 직접 할머니께 드리는 분들도 있었다.
지금 말로는 "복채"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그때 당시할머니 할아버지가" 점"을 잘~ 봤나 보다.)
내가 스무 살 때, 결혼한다고 결혼 날짜를 잡으려고 할 무렵
할머니는 궁합이 절대 안 맞는다고 결사반대를 하셨다.
그냥 반대 정도가 아니다.
울고불고 절대!!! 네버!!!!! 안된다고!!!!
아참,
외갓집은 불교(점집인데.....? 암튼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으니...)
우리 엄마 종교는 남묘호렝개교 였다. (일본 종교다.)
엄마는 허구한 날내가 학교 갔다 오거나 하면 방에 들어앉아 무릎 꿇고
"남묘호렝개교~~ 남묘호렝개교~"를 수백 수천번 반복하며 무언가를 빌었다.
나도 주말이면 엄마손에 이끌려
남묘호렝개교 청소년반에 가입 해야한다 며,
억지로 끌려가곤 했다.
가보니, 남학생 여학생이 꽤나 많았다.(10명 이상은 됐다.)
남학생들이 더 많았다.
(잘 생긴 남학생들도 몇 있었기에 난 바로 가입했다)
엄마의 강제적 이끌림으로 나는 그 종교 단체에 주말에만 잠깐 갔다가
그냥 또래 아이들과 대충 시간 때우듯놀다왔고,
엄마가 무릎 꿇고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는 척도 자주 했었다.
(무얼 기도했냐면... 제발 기도 좀 안 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거 같다)
이쯤...
다시 결혼 얘기로 돌아가자.
외할머니와 친정엄마 아빠의 결사~!!! 반대를 무릅쓰고
이미 뱃속의 아이를 핑계로 시댁 어른들과 어찌어찌 결혼 날짜를 잡았다.
시댁의 종교는 천주교였다.
천주교인들은 결혼 전 반드시 교리 공부를 짜인 메뉴 얼 데로 처음부터 끝까지끝까지
공부를 무사히 마쳐고 세례를 받아야만 성당에서 혼인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굳이 성당 말고 다른 예식장들이 수두룩 빡빡이 었는데도 말이다.ㅠㅠ)
아이를 가진 나에게는 이 또한 스트레스 가득 받는 특명이었다.
남편 될 사람한테 애원하고 매달려봤지만 역시 남편은 남의편이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할머니 말씀을 절대적으로 들을걸.... 그랬다.)
시어머님의 강력한 주장으로 난 어머니 단골 성당의 천주교에
입문하게 되었고 천주교식 새엄마를 또 만들어야 했다.
(지금도 이해 안 감... 시엄마가 만들라고 해서 만듦. 지금은 누군지도 모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교리 공부를 위해 부개동에서 부평시장까지
버스를 타고 성당에 왔다.
일주일 세 번은 교리 공부~~ 일요일은 미사에 참석해야 한다고
시어머님의 특명으로 난 일주일에 네 번을 성당에서 보내야 했다.
교리 공부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진행됐고
주말 미사는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암암리 안겨 주었다.
일요일 아침,
임신 중이라 배는 불러 한발 한발 뒤뚱거리며
버스를 타고 성당으로 향하는 중~갑자기 두통이 너무도 심해
속이 뒤집어져 오바이트를 위해 버스에서 중간에 내렸다.
(아침 먹은 재료 중간지점 남의 화단에 전부 버렸다)
찬바람을 쐬려 한정거장을 걸어 또다시 버스를 탔다.
또다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이젠 배까지 뒤틀리며 도저히 성당까지 가기가 너무 버거웠다.
시어머니께 전화했다.
시어머니가 얼굴 보고 가라며 굳이 오라신다.
(정말 싫었으나 갔다)
(내가 착한 건지 병신인지...... 지금 같으면 절대 안 갔을 텐데!!)
아무튼 주말 미사 때마다 나는 많이 아팠다.
한 번은 미사 도중 배가 너무 아파서 참다가 옷에 똥 쌌다.
아니다. 속옷에 묻힌 건 두세 번 이상인 거 같다.
다들 거짓말이라고 했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진짜로 주말 미사에만 참석할라 하면 배가 뒤틀리고 머리가 아팠다.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니네집귀신 하고 우리집 귀신하고 싸우는 중이라고.
너만 잘 견디면 우리 집 귀신이 이긴다고!!!!
(시엄마도 우리 엄마가 남묘호렝개교인걸 알고 계시다. 내가 얘기했다.)
나는
내 몸이 너무 아프고 또 속옷에 똥까지 쌀 정도면 굳이 정석대로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굴려봤다.
주말이면 시엄마가 참석하는 미사 시간대를
비껴가기로 했다.
주말 미사 시간은
새벽 6 미사 가 있었고, 오전 9시, 오전 11시, 그리고 저녁 7시 미사가 있었다.
시엄마는 항상 11시 미사에 참석하셨기에 난 9시 미사로 시간대를 바깟다.
집에서 오전 8시쯤 출발~ 성당에 도착시간 9시 10분 전 난 주보를 먼저 챙겼다.
시엄마가 매주 물어본다.
(오늘 신부님 말씀 잘 들었니? 주보 4쪽에 그거 봣지? )
그래서 난 주보는 늘.... 먼저 챙긴다.
주보를 챙겨 들고 나는 성당 앞 지하 다방으로 향했다.
진짜로~~~ 거짓말 안 하고 진짜로~~
성당 안으로만 들어만 가면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팠고
배가 뒤틀리기 시작했는데....
성당 앞 지하 다방으로 향해 요구르트 한잔 마시는 시간에는
내 몸이 거짓말처럼 하나도 안 아팠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난 주말마다 미사 시간 때는 성당 정문 앞 다방을 찾았다.)
이삼 주 동안 주말 미사 시간은 다방에서 때우고
시엄마한테는 잘 갔다 왔다 고 거짓말을 했다.
( 난 몸이 안 아픈 게 더 좋았다. 머리 아픈 것도 싫었고,
속옷에 똥 싸는 것도 너무 싫었다.
누구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몰랐다.
정말 귀신은 있는 거 같다.
시엄마의 특명을 받들어 교리 공부도 무사히 마치고,
성당에서 혼인서약도 하고 결혼식도 무사히 잘(???) 마쳤다.
친정 귀신과 시댁 귀신이 싸워 시댁귀신이 이긴 것도 같고....
누구 말이 맞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은 냉담하고 있다.
어머님도 아버님도 모두 돌아가셨으니
누구도 나에게 특명을 내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 남의 편인 사람 말을 내가 듣겠는가??)
하지만,
늘상 마음속으로 기도는 하게 된다.
하느님,
우리 아이들 건강하고 무탈하게 직장에서 인정 받고
사회생활 잘 할수 있도록 해주시고
미비하지만 현실에 만족하는 건강한 삶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항상 긍정적인 사고로 하루 하루 행복하고 만족한 삶 살아가게 하시고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 갖게 하여 주시고
누구와도 다투지 않게 하여 주시고
밝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원하는 삶 살아갈수 있도록이끌어 주세요~~
아 멘.
이모든 이야기는 나의 실화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님들 감사합니다.
대박 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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